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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원재 교수 등은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논문을 한 편 실었다. 장내 세균이 초파리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한 내용이다. 무균 상태의 초파리 유충은 성장을 못해 세균이 붙어 있는 보통 유충에 비해 크기가 훨씬 작은데, 연구팀이 무균 유충에 아세토박터 포모룸(Acetobacter pomorum)이란 세균을 먹이자 제대로 성장했다.
이 교수는 “이 세균이 알코올을 먹이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내놓는 어떤 물질이 초파리 장(腸)의 줄기세포 분화를 촉진하고, 인슐린(또는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의 신호체계를 활성화함으로써 초파리 유충의 혈당 조절과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내 세균은 동물의 면역체계도 훈련시킨다. 면역계를 늘 긴장하게 만들어 외부에서 병원균이 들어왔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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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 구균. 공 모양처럼 생겼으며 식중독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
지난 8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아일랜드 연구팀이 락토바실루스 람노수스(Lactobacillus rhamnosus)라는 세균을 생쥐에게 먹인 결과 스트레스도 덜 받고, 뇌의 신경전달물질 수용체 숫자도 늘어났다. 뇌의 활동이 활발해졌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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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장내 세균인 대장균. 장출혈성 대장염을 일으키는 변종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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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위에서 발견되며 위암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
장내 세균은 다발성경화증도 일으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발성경화증은 뇌와 척수의 신경섬유 주위 보호막인 미엘린이 파괴되는 병으로 운동마비·언어장애·의식장애 등의 증세를 일으킨다. 지난달 28일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독일 막스플랑크 신경생물학 연구소 연구팀이 다발성경화증을 나타내도록 생쥐의 유전자를 조작했으나 무균 생쥐에게서는 이 병이 발생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다발성경화증이 나타나는 것은 장내 세균이 생쥐의 몸에서 자기면역반응이 일어나도록 유도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자기면역반응은 생쥐의 면역세포가 자기 몸의 세포를 적(병원균)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장내 세균이 적이 될지, 친구가 될지는 미묘한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100조 마리에 이르는 장내 세균 중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전체의 0.000001%라고 해도 100만 마리나 되는 셈이다. 스트레스나 항생제 사용 등 사람과 세균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 깨지는 순간 병원균이 삽시간에 수십억 마리로 증가해 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장내에 서 다른 세균에 눌려 지내던 병원균이 항생제 사용으로 인해 상황이 바뀌면 갑작스럽게 증식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세균=원기둥·공·스프링 모양을 가진 단세포 생물로 크기는 보통 0.5~5㎛(마이크로미터·1㎛는 1000분의 1㎜) 정도다. 대부분 외부에서 영양분을 흡수해 성장하며, 한 개의 세포가 두 개로 나뉘는 이분법으로 증식한다. DNA를 둘러싸는 핵이 없어 원핵생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