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에덴에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낙원이었기에 그곳에는 평화와 행복만이 있었습니다.
의식주가 완벽히 보장되었기에 땀 흘리는 노동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실낙원
이후 인간에게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때로는 힘이, 때로는 돈이, 때로는 질병이, 때로는 전쟁이,
때로는 일자리가 두려움이 되어
인간을 괴롭혔습니다.
한국은 그동안 두려움이 많은 땅이었습니다. 우선 전쟁이 제일 무서웠습니다.
한국전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우리는
전쟁의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병역의 의무가 신성하다는 명제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할 만큼,
군인들이 다소간 지위를 남용해도 눈을
감아줄 만큼, 전쟁은 늘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제 또래들은 지금도 이따금 전쟁의 공포를 꿈에서 만납니다.
두번째 두려움은 먹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밥 먹었느냐”는 인사가 남아 있었습니다.
사실은 국민들이 기아와 절대빈곤의 공포에서 벗어난 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수출할 상품이 없어 삼단 같은 머리를 잘라야
했던 것도 바로 엊그제의 일입니다.
역대 위정자들은 왜 그렇게도 무서웠을까요?
대통령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절대왕정의 임금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택시 안에서 대통령 욕을 하면 곧 바로 잡혀갔습니다.
고층건물에서 불시에 창밖을 내다보지 말라는 방송이 나오면
그것은 대통령이 지나간다는 신호였습니다.
헌법보다 더 높은 것이 대통령의 통수권이었습니다.
군대, 정보기관, 검찰,
세무서, 경찰 등 이른바 권력기관의 힘은 또 얼마나 셌습니까.
이런 기관들이 대통령의 통수권을 지키는 도구였습니다.
무섭기는 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때는 전쟁도, 쿠데타도,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패도
모두 미국의 손에
달려있다는 믿음이 지배했습니다.
그 때는 미국이 정말 무서웠습니다.
수출입 코터 등의 통상문제와 환율에서도 미국의 힘은 무서워
보였습니다.
주한 미국대사와 주한 미군사령관은 한국의 대통령도 거북스러워하는 대상이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항상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2006년 현재 한국에는 지난날의 두려움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우선 남북이 오가면서 전쟁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실험 보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사재기를 하지 않습니다.
6.25가 돌아와도 국민들의 관심사는 온통
월드컵입니다.
보리 고개에는 이미 아스팔트가 깔려 그 위로 승용차들이 질주합니다.
그래서 밥도 두렵지 않습니다.
단지 밥을
너무 많이 먹어 늘어난 뱃살이 부담스러울 뿐이지요.
대통령이야말로 전혀 무섭지 않은 존재로 변했습니다.
대통령이 그러니 국회도, 국정원도, 검찰도, 경찰도 무섭지 않습니다.
무섭지 않기는 언론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되고, 방송이 목청을 돋우어도 아무 탈이 없습니다.
신문이
떠들어도 정부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신문은 대통령을 무서워하기는커녕 대통령이 뭐라 하면 오히려 조롱합니다.
무서워 보이던 미국도 더 이상 무섭니 않습니다.
급기야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미국의 주한미군기지들이
한국
전투경찰의 보호를 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투경찰도 대추리에서는 시민단체에 맥을 추지 못합니다.
최근 서울을 다녀간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수상이 한마디를 했습니다.
경찰과 시민들이 서로 싸울 힘을 국가 발전에 쓰면 좋겠다고.
최근의 5.31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압승함으로써 지방정부는
이제 무서운 것이 없어졌습니다.
단체장과 지방의회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당이 싹쓸이를 했으니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시장과 시의회 사이에 견제나 감시는 당분간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공직자들은 국민들이 세금의 용처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는 젊은 아내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며 전혀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사위를 백년손이라고 어려워했는데
이제는 장모가 사위의 최대 천적이 되었습니다.
사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애저녁에 갈라서자고 레드카드를 들이밉니다.
이혼도 전혀
무섭지 않기에 시집살이도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은 오래된 부부 사이에도 전이되어 나이든 아내가 남편을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과 학부형들이 선생을 무서워하지 않고 교사들은
교장과 재단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대학 교수들도
재단이사장이나 총장을 어려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마침내 하나님도 무서워하지 않는 성직자까지 출현했습니다.
일부 교회에서는
목사들이 하나님의 돈인 헌금을 빼다가 가족의 사업에 쓰는가하면,
여신도와의 염문에도 불구하고 태연자약하게 강단을 지키는 목사들까지
생겨났으니까요.
양심과 진리도 무섭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빌게이츠의 고백을 들어보면 그는 항상 회사가 2,3년 후에 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회사를 경영합니다.
이런 두려움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 최고의 위치에 머물게 합니다.
내일이 무섭기에 그들은 오늘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
무서움이 지금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한국의 상장기업은 주인인 주주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창업자는 상장 때주식을 공개해 돈을
법니다. 창업기의 수고는 이때 충분히 보상받습니다.
따라서 경영을 맡아 총수일가가 사적이익을 취하면
그것은 다른 주주들의 재산을
훔치는 범죄입니다.
지난 날 한국에는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는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자, 이제 무서운 것들이 다
사라진 한국은 필경 낙원이라야 하고, 두려움이 사라졌으니
태평성대라야 하겠지요?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갑니다.
대체로 사람들에게
무서운 것이 없어지면 세상이 풀어져 마침내 난세가 되고 맙니다.
맹자는 백성이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라를 통치할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대명천지에 무서움을 예찬하거나 다시 무서운 시대로 돌아가자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서운 것이 없어서 기본적인
놈(norm)마저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두려움이 다 사라진 우리에게 새로운 두려움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이대로 가면 세상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민족에게서 희망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필자 소개> 서재경 :SPR경영연구소 대표
58세/외대 서반아어과 졸업/하버드대학 부설 한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 역임.
5년간 서울경제신문기자 생활 후 대우그룹에 입사해 22년간
근무.
(주)대우 중남미본부장으로 해외 일선을 지휘했고,
그룹 기조실과 비서실에서 최고경영자를 위한 참모와 조언자로서 일하면서
특히 위기관리 대책개발에 집중함./전경련 회장 보좌역을
끝으로 대우그룹을 떠나
SPR경영연구소를 설립, 컨설턴트로 활동 중.
2001년부터 3년간 외국어대학 겸임교수로 경영학을 강의. 다산연구소 창립에 참여했고
현재는 서남해안포럼 창립에 참여하여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음.
[連友포럼] 자문위원(現)/저서 및 역서:<기업인의 이미지><시장은 넓고 팔 물건은 없다>
<한반도 운명에 관한 보고서><리더여 두려움을 극복하라><르네상스 매니지먼트>
<부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산을 오르듯 나를 경영하라>등
연락처: (031)897-2138 /이메일: jksuh2000@hotmail.com /홈페이지: http://www.jksu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