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쇄적인 마법의 요정, 키르케 Circe
Franz von Stuck - Tilla Durieux as Circe
오 '아름다움'이여!
악마 같으면서도 숭고한 그대 눈길은
선과 악을 뒤섞어 쏟아부으니.
그대를 가히 술에 비길 만하다.
그대는 눈 속에 석양과 여명을 담고
폭풍우 내리는 저녁처럼 향기를 부린다.
그대 입맞춤은 마약,
그대 입술은 술 잔,
영웅은 무력하게 하고,
어린애는 대담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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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닥치는 대로 기쁨과 재난을 흩뿌리고,
모든 것을 지배하되,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Franz von Stuck - Circe
'아름다움'이여
그대는 죽은 자들을 비웃으며 그 위로 걸어간다
그대의 보석 중 '공포'도 매력이 못하지 않고,
그대의 가장 비싼 패물 중 '살인'이
그대의 거만한 배 위에서 요염하게 춤춘다.
현혹된 하루살이가 그대 촛불에 날아가
탁탁 타면서 말한다.
"이 홧불에 축복을!" 하고.
.....
빌로드 같은 눈을 가진 요정이여,
운율이여,
향기여,
빛이여,
오 내 유일한 여왕이여!
보들레르 '악의 꽃 - 아름다움에 바치는 찬가' 中
<
Wright Barker -Circe 1900
요정 키르케! 만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태양신 헬리오스와 바다의 요정 페르세의 딸로
키르케는 ‘독수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녀는 눈부신 외모와 인간을 동물로 바꾸는 마법으로 유명했는데
전설의 섬 아이아이에(Aiaie)에 살면서
그 섬에 오는 사람에게 마법을 걸어 동물로 변하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스의 최고의 영웅인 오딧세우스마저
자신의 성적 매력으로 굴복시킨 그녀의 매력은 너무도 유명하다.
Pier Francesco Cittadini - Circe and Odysseus
트로이 함락 후 영웅 오디세우스는 부하와 함께 귀국 도중 이 섬에 배를 대었다.
제비를 뽑아 23명의 부하가 선발되어
에우릴로코스를 대장으로 이 섬의 탐험에 나섰다가
키르케의 저택에 당도하였다.
문 앞에는 늑대와 사자가 있어 그들에게 달려들어 놀라게 했으나,
그녀는 일행을 맞아들여 환대하면서 약을 탄 술을 마시게 한 다음,
지팡이로 때려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모두 돼지로 만들어 버렸다.
멀리서 이를 보고 있던 에우릴로코스의 급보를 접한 오디세우스는
단신으로 부하의 구조에 나섰다.
John William Waterhouse - Circ? offering the Cup to Ulysses 1891
지금도 서양에서는 남자가 여인의 육체에 넋을 빼앗길 때면
'키르케에게 홀렸다'는 비유를 한다.
그녀의 냉혹한 아름다움은 이 그림에서 절정에 달한다.
알몸이 훤희 드러난 옷을 입은 요염한 키르케가
오디세우스에게 마법의 술잔을 내밀며 유혹을 한다.
왼손에 놓이 쳐든 막대기는 마술 지팡이다.
마법의 술에 위한 남자를 이 막대기로 치면
금새 훙측한 돼지로 변해 버린다.
키르케의 발치에 몽롱한 눈을 치뜬 채 널브러져 있는 돼지도
마법에 걸린 희생물이다.
경계심을 잔뜩 품은 얼뜬 오디세우스의 얼굴이
키르케의 등뒤에 놓인 커다란 거울에 어렴풋이 비친다.
그리스 최고의 영웅이라는 명성을 간 곳 없고
마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기색이 역력하다.
키르케의 눈부신 자태는 화면을 압도할 만큼 크고 당당한 반면
영웅의 모습은 초라하고 왜소하게 그린 것도
그녀의 유혹이 그만큼 치명적임을 말하는 것이리라.
John William Waterhouse - Circ? Invidiosa 1892
워터하우스가 그린 위의 키르케는는
마녀의 관능미가 얼마나 농염한가를 잘 보여 준다.
위의 그림은 질투심으로 독기를 품은 여인의 잔인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지금 이 장면은 연못에 마법의 약을 붓는 살벌한 키르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질투로 눈에 가득 독기를 품고 이를 악무는 키르케의 표정에서
오싹한 한기보다는 에로티시즘의 극치가 느껴진다.
키르케에게 이토록 강렬한 질투심을 불러일으킨 남자는 바다의 신 글라우코스다.
John William Waterhouse - Circ?
글라우코스는 아름다운 처녀 스킬라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만 상사병이 났다.
짝사랑에 애가 탄 글라우코스가 사랑의 열병을 이기지 못해
키르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자,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사랑의 화살이 키르케에게 꽂혔다.
당황한 글라우코스는 자신의 유일한 사랑은
오직 스킬라뿐임을 못박고
키르케의 구애를 냉정하게 거절했다.
Neer, Eglon van der - Circe punished by Glaucus Scylla into a monster change 1695
질투심에 파랗게 질린 키르케는
스킬라가 평소 목욕을 즐기는 연못에 마법의 약을 풀어
그녀를 머리여섯달린 흉측한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Nicolas Regnier - Circe
키르케는 신비한 매력을 남성의 몸과 마음을 뺏어
파멸시키는 요부의 전형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남자를 사로잡는 여성의 강력한 힘은
마법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마법에 걸리지 않고서야 그토록 멀쩡하던 남자가 제 정신을 잃고
집안과 명예, 자존심을 내팽개친 채 욕정에 빠질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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