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좀 꿔 주게
박지원의 짧은 편지
누구나 인터넷을 쓰고 핸드폰을 지닌 세상에서 편지의 의미는 날로 빛이 바래간다. 주고받는 연하장의 수도 해마다 줄어든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습관처럼 메일 함을 열어보고, 문자를 날린다. 그런데도 속은 차지 않고 허전하기만 하다. 사람과의 만남은 겉돌기만 하고, 저마다 꿍꿍이속은
내보이질 않아 좀체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옛 사람들의 편지글을 볼 때마다, 과연 물질 환경의 발전이 삶의 질까지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일까 하는 회의를 지울 수 없다. 물질의
삶은 궁핍했으되, 정신의 삶은 보석처럼 빛났던 선인들의 자취를 그들이 남긴 짧은 편지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척독(尺牘)은 지금으로 치면 엽서 쯤에 해당하는 짧막한 편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문집에는 수십
통의 척독이 긴 편지글인 서(書)와 구분하여 따로 실려 있다. 18세기에는 이 척독소품이 성행했다. 짧은 글 속에 두 사람만이 아는 암호를 감춰
마음을 주고받는 널찍한 통로들을 만들었던 셈이다.
척독은 결코 시간이 없어 짧게 쓴 것이 아니다. 긴 편지를 쓰는 것 이상으로 애를 써서 작품성을 의식하고 제작된 글이다. 척독을 읽고
나면 정경이 떠오르고, 그림이 그려진다. 절제된 비유와 간결한 표현, 말할 듯 하지 않고 머금는 여백의 미를 추구한다. 척독은 산문보다 오히려
시에 가깝다.
진채(陳蔡) 땅에서 곤액이 심하니, 도를 행하느라 그런 것은 아닐세. 망녕되이 누추한 골목에서 무슨
일로 즐거워하느냐고 묻던 일에 견주어 본다네. 이 무릎을 굽히지 않은지 오래 되고 보니, 어떤 좋은 벼슬도 나만은 못할 것일세. 내 급히
절하네.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이. 여기 또 호리병을 보내니 가득 담아 보내줌이 어떠하실까?
〈기초정(寄楚亭)〉, 즉 박제가(朴齊家)에게 보낸 박지원의 짧은 편지다. 언뜻 보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예전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진채 땅에서 7일간이나 밥을 지어 먹지 못하고 고생한 일을 있다. 그러니 진채 땅의 곤액이란 자기가 벌써 여러 날을 굶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안회(顔回)처럼 가난한 삶을 즐기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벼슬하지 않아 무릎 굽힐 일 없음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보니, 이대로 굶어 죽을 수는 없고 돈 좀 꿔 달란 소리다. 궁한 소리를 꺼낸 김에 염치도 없이
빈 술병까지 딸려 보냈다. 이왕이면 술까지 가득 담아 보내달란 뜻이다. 그런데 막상 돈 꿔달라는 편지에 돈이란 말은 보이지 않는다. 원문으로는
고작 48자에 지나지 않는 짧은 글이다. 위 편지를 받고 박제가가 보낸 답장은 이렇다.
열흘 장마비에 밥 싸들고 찾아가는 벗이 못됨을 부끄러워합니다. 공방(孔方) 2백을 편지 전하는 하인
편에 보냅니다. 호리병 속의 일은 없습니다. 세상에 양주(楊州)의 학은 없는 법이지요.
그 역시 돈이라고 말하지 않고 공방(孔方)이라고 했다. 공방은 구멍[孔]이 네모[方]나다는 뜻이다. 동전 속에 네모난 구멍이 있기에
이렇게 말했다. 직접 먹을 것을 싸들고 가서 뵈어야 하는데 그저 동전 200냥을 인편에 부쳐 미안하다고 했다. 호리병 속의 일이 없다 한 것은
술은 못 부친다는 말이다. 술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여러 날 빈 속에 술을 마셔 좋은 것이 없었겠기에 한 말이다.
끝에 붙인 양주학(楊州鶴)은 고사가 있다. 여러 사람이 모여 각자의 소원을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은 양주자사(楊洲刺史)가 되고 싶다고
하고,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자도 있었다. 학을 타고 하늘을 훨훨 날고 싶다고도 했다. 맨 마지막 사람이 말했다. “나는 말일세. 허리에 십만
관의 돈을 두르고 학을 타고서 양주로 가서 자사가 되고 싶네.” 그러니까 양주학이란 말은 이것저것 좋은 것을 한꺼번에 다 누린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양주학이 없다고 한 것은 밥과 술을 다는 못 보내니 그리 알라는 뜻이다.
꿔달라는 사람이나 꿔주는 사람이나 피차 구김살이 없다. 평소 깊은 정을 나누지 않고 주고받을 수 있는 편지가 아니다. 평소의 깊은 정과
든든한 신뢰가 깔려 있다.
달라는 것과 주는 것 중 어느 것이 싫겠습니까? 그야 달라는 것이 싫지요. 주는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진실로 달라는 사람이 남이 주지 않는 것을 싫어하듯 하게 하여, 이제 내가 구하지 않았는데도 넉넉하게 내려주심을 입게 되니 그대가 주는 것을
즐거워함을 믿겠구려.
〈답대호(答大瓠)〉는 대호란 사람에게 박지원이 보낸 답장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또 기껏
어렵사리 부탁했는데 들어주지 않으면 상대가 얼마나 밉겠는가? 이제 내가 청하기도 전에 그대가 넉넉하게 먹을 것을 보내주니 참으로 고맙기
그지없다. 이로 보건데 그대가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임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뭐 이런 이야기다.
궁함을 못 견뎌 도움을 청하려던 참에, 딱한 사정을 미리 알아 꼭 필요한 도움을 주어 고맙다는 말을 이렇게 했다. 개선될 기미가 전혀
없는 절대의 궁핍이 보는 이를 민망하게 한다. 박지원의 편지에는 유난히 돈 꿔 달라는 편지가 많다.
“문전에는 빚쟁이가 기러기 떼처럼 섰는데, 집안에는 취한 사람 고기 꿰미처럼 자고 있네.” 이는 당나라
때의 대 호걸이요 사내라 하겠습니다. 이제 저는 추운 집에서 홀로 지내니 담담하기 입정에 든 중과 같군요. 다만 문 앞에 기러기처럼 서있는
자들은 두 눈빛이 가증스럽습니다. 매번 말을 비굴하게 할 때마다 도리어 등설(滕薛)의 대부를 떠올리곤 합니다.
〈여성백(與成伯)〉이다. 성백은 연암의 셋째 자형인 서중수(徐重修, 1734-1812)다. 중국 유진체(劉津逮)의 시를 슬쩍 끌어다가
빚독촉에 몹시 시달리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금방 갚겠노라고, 한번만 형편을 봐달라고 굽신거릴 때마다 등설(縢薛)의 대부를 떠올리곤
했다고 하여 말꼬리를 흐렸다. 역시 《논어》에서 따온 말이다.
무슨 뜻인가? 자신은 문밖에 빚쟁이들이 늘어서 있어도 아랑곳 않고 술 취해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던 곽량아처럼 호걸스럽지 못해, 대문 밖
빚쟁이들의 등쌀에 초연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미안하다고 연신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조그만 등설 땅의 대부를 생각한다는 말은 그래도 몸을
굽혀 남의 밑에 들어가기보다는 부족하나마 스스로 자부하며 처음 뜻을 지켜가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요컨대 몹시 궁하니 돈 좀 빌려달라는 편지다.
세 통 모두 돈 좀 빌려달라거나, 빌려주어 고맙다는 내용인데, 어느 것 하나 직접 돈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고도의 비유를 끌어와
궁상스런 뜻은 행간에 숨겼다. 그래도 이런 절대의 궁핍이 그의 뜻을 굽히게 하지는 못했다. 옳지 않은 일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같지 않은
인간과는 상종도 하지 않았다.
교묘하기도 하구나! 이 인연이 하나로 모임은. 누가 그 기미를 알겠는가? 그대는 나보다 먼저 나지
않고, 나 또한 그대보다 뒤에 나지 않아 나란히 한 세상에 살고 있고, 그대는 흉노처럼 얼굴 껍질을 벗기지 않고 나도 남쪽 오랑캐같이 이마에
문신하지 않으며 함께 한 나라에 살고 있소. 그대는 남쪽에 살지 않고 나는 북쪽에 살지 않아 더불어 한 마을에 집이 있고, 그대는 무(武)에
종사치 않고 나는 농사일을 배우지 않으며 같이 유학에 힘을 쏟으니, 이것이야말로 큰 인연이요 큰 기회라 하겠소. 비록 그러나 말이 진실로 같고
일이 진실로 합당하다면, 차라리 천고를 벗삼고 백세의 뒤를 의혹하지 않음이 나을 것 같구려.
〈여경보(與敬甫)〉란 편지다. 경보가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알쏭달쏭한 편지다. 글을 따라 읽으면 이렇다. 그대와 나는 한 시대에
나서 한 나라에 태어나 같은 마을에 살고 있고, 같은 학문에 종사하고 있다. 이런 인연과 기회는 정말로 쉽게 만날 수 없는 기막힌 우연이
아닌가?
정작 박지원이 하고 싶은 말은 끝의 두 줄에 담겨 있다. 일껏 말해 놓고서, 품은 생각이 같고 사리에 맞는다면 그래도 차라리
천고(千古)의 위를 벗으로 삼고, 백세(百世)의 뒤에 올 사람을 믿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 다시 말해 그대와 나는 이렇듯 가까운 인연을 공유하고
있지만, 너하고는 생각도 다르고 마음도 안 맞으니, 너하고는 안 놀겠다는 내용이다.
아마도 경보란 이가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 왔던 모양이다. 이 편지를 받고 나서 에둘러 거절한 내용이다.
성동격서(聲東擊西)의 반어가 참으로 절묘하다. 통렬하게 비꼬는 어조가 앞의 장황한 너스레에 눌려 의미가 표면화되지 않고 완곡해 졌다. 하지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모욕감으로 치를 떨었을 법한 편지다.
하지만 마음 맞는 벗에게 보낸 편지는 영 딴판이다.
꽃병에 11송이 꽃을 꽂아 팔아 동전 스무 닢을 얻었소. 형수님께 열 닢을 드리고, 아내에게 세 닢,
작은 딸에게 한 닢, 형님 방에 땔나무 값으로 두 닢, 내 방에도 두 닢, 담배 사느라 한 닢을 쓰고 나니, 공교롭게 한 닢이 남았소. 이에
올려보내니 웃고 받아주면 참 좋겠소.
〈여무관(與懋官)〉, 즉 이덕무에게 보낸 편지다. 박지원은 이덕무에게서 밀랍을 녹여 조매(造梅) 만드는 법을 배웠다. 오랜 연습 끝에
매화 11송이를 만들어 화병에 꽂아 비단 가게에 팔고, 받은 돈 가운데 한 냥을 이덕무에게 보내면서 자랑삼아 쓴 편지다. 물론 둘 사이에만 통할
장난이다. 선비가 매화를 만드는 것만 해도 해괴한데, 그걸 팔아 돈을 벌었다니 큰 허물이 될 소리다. 이제 자신이 만든 매화를 비단 가게에서 돈
주고 살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는 자랑을 이렇게 했다. 읽으면 웃음이 나온다.
이 글을 받은 이덕무는 또 이렇게 답장했다.
내가 마침 구멍난 창을 바르려 했지만 종이만 있고 풀이 없었는데, 무릉씨(武陵氏)가 내게 돈 한 잎을
나누어주는 바람에 풀을 사서 바르는 일을 마쳤다. 올해 귀에 이명(耳鳴)이 나지 않고 손이 부르트지 않는 것은 모두 무릉씨의
덕분이다.
정으로 보낸 편지에 정으로 화답했던 것이다. 박지원의 척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과 괴로움은 바로 박지원 특유의 톡 쏘는 풍자와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해학에 있다.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을 돌려서 말하고, 길게 말해야 할 것을 한 두 마디로 찔러서 이야기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게 말꼬리를 흐리고, 비유 속에 할말을 감춰두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 글은 언뜻 보아서는 분명한 의미를 알 수 없다. 여러 번 곱씹어야 본
뜻이 드러난다.
옛 사람이 술을 경계한 것이 아주 심했다 할 만 하네. 술에 부림당하는 것을 주정한다[酗]고 하니 그
흉덕(凶德)을 경계한 것이요, 술 그릇 중에 舟器가 있으니 뒤집어져 빠지는 것을 경계한 것일세. 술독[罍]이란 글자는 괴롭다[纍]는 글자와
관계되고, 술잔[斝]이란 글자는 혹독하다[嚴]는 글자에서 빌려온 것이네. 잔[盃]이란 글자는 그릇이 아니라[不皿]는 뜻이고, 잔[巵]이란 글자는
위험하다[危]는 글자와 비슷하지 않은가. 뿔잔[觥]이란 글자는 부딪침[觸]을 경계한 것이고, 잔[盞]이란 글자는 창[戈] 두 개를 그릇[皿]
위에 얹은 것이니 서로 다툼을 경계한 것이지. 술통[樽]이란 글자는 절제하라[撙節]는 뜻을 나타내고, 술 따르는 그릇[禁]은 금하고
억제하라[禁制]는 말이라네. 죽음을 따르는 것[從卒]이 취함[醉]이 되고, 삶에 속하는 것[屬生]이 술깸[醒]인 것이지. 주관(周官)은
평씨(萍氏)가 술을 맡았는데,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살펴보니, 부평초[萍]가 능히 술을 깨게 한다고 했더군. 우리들이 술을 즐김은 옛
사람보다 더하나 옛 사람이 경계를 드리운 뜻에는 어두우니, 어찌 크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원컨대 이후로 우리가 술을 앞에 두면 문득 옛 사람이
글자를 만들었던 뜻을 생각하고, 여기에 더하여 옛 사람이 만든 그릇의 이름을 살피기로 하세. 어떠한가?
〈답영재(答泠齋)〉, 즉 유득공에게 보낸 답장이다. 통음(痛飮)의 술자리를 마친 이튿날 앞으로는 너무 지나친 음주를 서로 삼가자는
반성을 담았다. 술과 관련된 글자를 있는대로 끌어와서 그야말로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 모두를 ‘계(戒)’ 한 글자에 관련지웠다.
거의 파자(破字) 놀이에 가까운 기상(奇想)을 마음껏 펼쳤는데 그 연상력이 자못 놀랍다. 그러면서도 담은 내용은 희떠운 농담의 수준을 벗어났다.
이런 글은 앉은자리에서 일필휘지로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동안 축적해온 생각을 어떤 계기를 만나 펼쳐본 것이다.
다시 한편을 더 읽어보자.
어제는 우리가 달을 져버린 것이 아니라 달이 우리를 져버린 것일세. 세간 모든 일이란 것이 모두 저
달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한 달은 서른 날, 큰 달도 있고 작은 달도 있지. 1일이나 2일은 테두리만 보일 뿐이라네. 3일에는 겨우 손톱자국
만해지지만 그래도 저녁볕에 비치기는 하지. 4일에는 갈고리 만해지고, 5일에는 미인의 눈썹 같아진다네. 6일에는 활과 같지만, 광휘가 활시위처럼
펴지지는 못한다네. 10일이 되면 비록 빗 같다고 말할만은 해도, 빈 테두리는 여전히 보기가 싫네. 11, 12, 13일에는 마치 남송(南宋)의
산하와 같아 오촉강남(吳蜀江南)이 차례대로 점차 평정되어 모두 판도 속으로 들어왔지만, 운연(雲燕)은 요(遼)에게 함락되어 금사발이 마침내
이지러진 것과 같지. 14일은 곽분양(郭汾陽)의 운수가 오복을 두루 갖추었으나, 다만 한 구석에 환간 어조은(魚朝恩)이 찰싹 붙어 있어 염려하고
경계함과 같으니 이것이 결함이 될 뿐이라네. 그렇다면 거울처럼 온전히 둥근 것은 15일 하루 저녁에 지나지 않는군. 혹 보름이 옮겨가 16일에
있기도 하고, 엷은 월식이 둥글게 무리지기도 하지. 그렇지 않으면 짙은 구름에 덮이거나, 세찬 바람과 소낙비로 마치 어제처럼 사람의 뜻을
어그러뜨리기도 한다네. 우리는 이제부터 마땅히 송나라 조정의 인물을 본받거나, 곽분양이 복을 아낀 것을 바라는 것이 옳을 것이네.
〈답중옥(答仲玉)〉이다. 보름 밤 모처럼 달보며 놀자던 약속이 날씨 때문에 어긋난 뒤 보낸 편지다. 1일부터 15일까지 조금씩 변화하는
달의 모양을 절묘하게 묘사했다. 손톱만하던 것이 갈고리 만해지고, 미인의 눈썹 같다가 활처럼 된다. 얼레빗인가 싶다가는 어느새 보름달에
가까워진다.
끝에 가서 갑자기 남송의 산하와 당 현종 때 곽자의(郭子儀)의 이야기를 끌어와 온전하지 않은 달의 형상을 기막히게 비유했다. 곽자의는
안록산의 난을 평정했던 인물로 후대 팔자 좋은 인물의 상징으로 대변된 인물이다. 하지만 환관 어조은(魚朝恩)이 늘 그를 황제에게 참소하였으므로
항상 조심스레 행동했다.
송나라 조정의 인물을 본받거나, 곽분양이 복을 아낀 것을 본받자고 한 것은, 다음 번엔 15일로 붙박지 말고, 그 전이라도 날씨만
좋으면 만나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즐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슬쩍 농친 것이다.
귀에 대고 하는 말은 듣지를 말고, 절대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며 할 얘기라면 하지를 말 일이오.
남이 알까 염려하면서 어찌 말을 하고 어찌 듣는단 말이오. 이미 말을 해 놓고 다시금 경계한다면 이는 사람을 의심하는 것인데, 사람을 의심하면서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하겠소.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벗의 글을 받고 보낸 답장인 듯 하다. ‘이건 비밀인데’ 하면서 하는 말은 대개 그
말까지 같이 전해진다. 말해놓고 당부하는 것은 믿지 못한다는 뜻이다. 못 믿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그런 말을 하려거든 아예
하지를 말라고 충고했다. 어떤 경우 이런 충고는 약간은 심사가 뒤틀린 비아냥거림의 어조를 보이기도 한다.
박지원의 문집 속에는 50여 통의 이런 짤막한 편지가 실려 있다. 한 통 한 통 들춰볼 때마다 그네들의 삶의 속살이 훤히 들여다뵌다.
이런 편지들은 어떻게 남을 수 있었을까? 이덕무가 죽었을 때 이서구(李書九)는 평생 모아 둔 친구의 편지를 차곡차곡 정리해서 배접하여 작은
책자로 만들었다. 그래서 슬픔에 잠긴 이덕무의 아들에게 보내면서 “네 아버지가 내게 보낸 편지들이다. 잘 간수해서 문집 속에 넣도록 해라”라는
메모를 남겼다. 그 뭉클한 정이 마음을 울린다. 이런 쪼가리 글들이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전해졌다. 정작 기록할 줄 모르고 조금도
정리할 줄 모르는 우리를 부끄럽게 되돌아보게 한다.
출처 : 정민 교수의 옜글 공부방 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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